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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발라 [생명나무] 우주와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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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우주나무 댓글 0건 조회 7,434회 작성일 16-08-19 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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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078, Vote: 10, Date: 2004/06/26 14:02:27 , IP: 211.219.117.241
글 제 목 [생명나무] 우주와 나무
작 성 자 문성호




우주와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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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우리에게 휴식과 생명을 준다. 집에서 조금만 걸어 나가면 공원이 있는데, 나무들 특유의 신선한 내음이 코를 찌르면 나는 비로소 살아있다는 느낌과 함께 지친 마음과 몸의 위안을 얻는다. 나무는 또 영혼을 고양시킨다. 머리속의 잡다한 생각과 감정 찌꺼기들을 솔솔 날려 보내고 가끔씩 품속의 새를 날려 보내 자유로운 내 영혼의 본질을 깨우치게 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황무지와 다름없는 도시생활 속에서, 나무와 숲은 비길 데 없이 소중한 고향 같은 존재이다. 

고대인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무를 숭배하였다. 나무 그 자체를 생명과 의식을 지닌 신령스러운 존재로 보거나 나무에 깃든 정령을 섬기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고대인들은 나무를 세계의 축 또는 우주를 표상하는 하나의 상징물로 보았다. 예를 들어 옛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은 이 세계가 ‘이그드라실’이라 불리는 거대한 물푸레나무 안에 들어있다고 믿었는데, 이 나무 아래 아홉 개의 세상이 존재하고 그곳에 신과 인간, 거인과 난쟁이들이 살고 있었다. 그 가지들은 온 세상 위로 뻗어 나가 하늘을 덮었으며, 나무의 꼭대기는 신들의 천상 거주지인 아스가르드에 닿았다. 줄기는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중간계인 미드가르드를 가로지르며, 이곳에 인간들이 산다. 또 이 물푸레나무에는 세계를 떠받치는 엄청나게 큰 세 개의 뿌리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신들의 세계인 아스가르드, 또 하나는 선사시대 거인들의 영역인 요툰하임, 나머지 세 번째 뿌리는 죽은 자가 머무르는 니플하임이라는 곳에 닿아 있었다. 신들의 지하 세계와 천상 거주지는 무지개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신들은 물푸레나무의 첫 번째 뿌리가 닿은 곳에 존재하는 샘 주변에 모여서 회의를 하였다. 요툰하임과 니플하임으로 뻗은 나머지 두 개의 뿌리 끝에도 샘이 있었다. 니플하임의 샘은 거대한 뱀 니드호그가 지키고 있다. 요툰하임의 샘은 현자 미미르가 지키고 있는데, 여기에는 온갖 지혜와 신비로운 지식이 담겨져 있었다. 

최초의 신이자 모든 신들의 아버지인 오딘은 미미르의 샘물을 마시기 위해 그의 한쪽 눈을 바쳐야 했다. 오딘(Odin)의 어원을 추적해보면 보딘(Woden), 보단(Wodan), 보탄(Wotan), 부탄(Wuotan) 등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나무(wood)나 바람(wind)을 의미한다는 것이 보편적인 정설이다. 히긴스(Godfrey Higgins)의 끈질긴 추론에 따르면 오딘 혹은 보딘(Woden)은 나무 이외에도 ‘지혜’의 뜻을 동시에 갖고 있다. 오딘은 한쪽 눈을 잃은 것 이외에도 9일 밤낮을 이그드라실에 매달려 고통을 받은 후 신들의 멸망(라그나뢰크)을 포함한 최고의 지식과 또 다른 세계의 신비한 언어인 룬 문자를 얻어 완전한 신이 된다. 이그드라실이라는 이름 역시 오딘과 관계가 깊은데, 그것은 ‘이그의 준마(駿馬)’라는 뜻으로 이그는 오딘의 여러 이름들 중 하나이다. 

북유럽인들에게 물푸레나무가 오딘에게 바쳐진 나무였다면, 참나무는 제우스에게 바쳐진 나무였다. 로마 사람들도 제우스를 참나무의 신으로 숭배했다. 켈트족에게도 제우스의 이미지는 거대한 참나무였는데, 켈트족의 사제계급인 드루이드도 “떡갈나무(참나무)의 현자들”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참나무와 참나무에 기생하는 겨우살이를 더없이 신성한 것으로 여겼다. 

인도에도 ‘아스바타’라고 하는 오래 된 우주목 신화가 있는데, 이는 일명 피팔(피쿠스 렐리기오사)이라고 부르는 신성한 무화과나무이다. 고타마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보리수가 바로 이 나무이다. 히긴스는 오딘의 어원을 붓다에까지 연관지었는데, 붓다의 타밀어 발음은 보딘(Woden)과 같다. 타밀종족은 현재 스리랑카 북부에 거주하지만, 그 원종(原種)은 아르메노이드와 지중해 인종의 혼혈이라고 한다. 나무의 상징에서 반복적으로 지혜의 코드가 나타나는 것은 주시해 볼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이밖에도 나무를 우주의 상징이나 세계의 중심축으로 보는 우주목 사상은 세계 여러 곳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된다. 티벳의 잠푼과 호주 원주민, 멕시코 유물의 코덱스 보르기아에 나타난 우주목, 이집트의 타마리스크, 메소포타미아의 생명나무 키스카누, 시베리아 샤먼의 자작나무, 그리고 우리나라 신시(神市)에 있었다고 하는 신단수(神檀樹)와 이를 본 따 소도(蘇塗)에 세운 솟대 역시 우주목 사상의 좋은 본보기들이다. 성서에 등장하는 선악의 지식나무와 생명나무 또한 우주목 사상의 한 예인데, 많은 이들은 에덴동산의 이 두 나무가 메소포타미아의 신화에서 유래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우주목은 다른 말로 세계수(世界樹), 지혜의 나무, 생명나무 등으로 불린다. 메소포타미아와 에덴동산의 두 나무는 본래 하나의 생명나무가 분리된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이런 우주목의 사상은 우주의 본질이랄까 아니면 우주의 구조나 속성이 나무의 형상을 통해 구체화되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특히 우주목이 생명과 지혜의 근원으로 지목되는 것은 현상세계 이면에 어떤 초월적인 원리가 작용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것은 신적인 존재가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우주 자체에 내재하는 자율적인 법칙에 의해서 표출되는 것일 수도 있다. 지상에 세워진 우주목은 차마 너무 거대해서 한 눈에 올려다볼 수 없는 광대한 현상세계를 축소해놓은 상징적 존재이자 우주의 반영물이다. 그렇다면 나무의 어떤 특성이 고대인들로 하여금 우주와 나무를 동일시하도록 만들었을까? 

우선 하늘을 향해 높게 치솟은 형상이 나무를 우주에 비유하도록 만들었을 거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나무는 하늘과 땅을 이어주며, 또 뿌리는 땅 속에 박혀 있어 이것은 지상과 지하, 천상의 삼계(三界)를 꿰뚫는 수직 축으로서의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신과의 소통을 통해 힘을 얻어야하는 시베리아의 샤먼들이 곧게 뻗은 전나무와 자작나무를 신성시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나무는 그 자체가 하나의 생명체이다. 뿌리와 기둥과 줄기와 잎, 각각의 부위가 나름대로의 기능을 맡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잘 조직되어 있어 생명활동을 유지하는데 지장이 없다. 만약 각 부분들이 본래의 역할을 잊고 제멋대로 움직이고 요구한다면 그 시스템은 곧 파괴되고 말 것이다. 우주 역시 하나의 유기적인 통일체이며, 고대인들은 우주가 일종의 생명체라고 보았다. 

나무는 또 강력한 생명력의 상징이다. 나무의 무성한 가지와 잎은 우주의 다양성과 풍요로움을 연상시켰을 것이다. 이 지구만해도 수백만, 수천만 종의 생명체가 우글거린다. 반면에 나무에 뿌리가 있다는 사실은 우주 만물에도 근원이 있다는 믿음, 혹은 모든 생명은 하나의 근원에서 나왔다는 고대인들의 믿음에 부합됐을 것으로 보인다. 

나무는 만물의 집이기도 하다. 온갖 동물과 새, 그리고 곤충들이 나무를 서식지로 하여 살아간다. 게다가 나무는 이들을 먹여 살린다. 나무가 없으면 모든 생명이 살아갈 수가 없다. 나무는 또 생명의 물을 머금고 토양유실을 막아주며, 뜨거운 햇볕과 비바람을 막아준다. 심지어 가구와 그릇, 침대, 집, 배, 농기구 등 온갖 살림도구들을 인간들에게 마련해준다. 이렇게 헌신적이고 쓸모 많은 나무는 신성(神性)의 상징이다. 태양 또한 가장 중요한 신성의 화신(化身)인데, 나무는 직접 그 태양으로부터 생명력을 받아 광합성을 한다. 그리고 그 에너지를 만물에게 베푸는 것이다. 

또 나무는 아름다움과 지혜의 상징이다. 웬만한 고대의 건축물이나 신전 기둥에는 어김없이 나뭇잎의 문양이 장식되어 있다. 가지에 피는 꽃은 화려함의 극치이며, 때로는 장미나 연꽃처럼 그 자체로 우주를 상징하기도 한다. 한편 많은 위대한 현자들이 성목(聖木)으로 만든 나무지팡이를 들고 다녔는데, 드루이드교의 예에서 보듯이 높은 깨달음을 얻은 현자는 나무와 동일시되기도 하였다. 그런가하면 참나무 줄기의 단단함이나 두꺼운 흙더미를 뚫고 돋아나는 새싹의 무서운 성장력은 왕성한 힘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지혜와 아름다움과 힘은 중요한 우주의 속성이다. 

나무는 시간이 갈수록 자라고 무성해진다. 가지는 둘로 또 셋으로 갈라지며, 잎은 더 커지고 숫자도 많아진다. 사실 진화하는 것은 생명체뿐만이 아니며, 암석과 지형의 무기물도, 그리고 항성과 은하 같은 천체들도 진화를 한다. 고대인들은 우주 역시 진화한다고 믿는다. 어쩌면 나무에 열매가 열리듯이 우주의 진화에도 어떤 소기의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닐까? 

나무의 상징은 또 씨앗의 상징이기도 하다. 씨앗 속에는 나무의 원형이 들어있다. 나무는 씨앗의 펼쳐진 형태이고, 씨앗은 나무가 수렴하여 얻어진 결과물이다. 뿌리와 줄기와 가지와 잎이 씨앗 속에 다 프로그램되어 있듯이, 우주에도 이런 원형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마도 우주와 나무를 동일시했던 고대인들의 일치된 견해였을 것이다. 

나무의 오랜 수명도 우주목 신화를 가능하게 했던 한 요인이었다고 본다. 인간의 짧은 수명을 고려해볼 때, 수백 년, 심지어 수천 년의 풍상을 능히 견디어내는 수목들의 경이로운 모습은 영속성(永續性)을 지닌 우주의 상징물로서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무가 영생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나무는 계절에 따라 옷을 벗으며, 그것은 보기에 따라 나무의 죽음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보라! 나무의 생명은 땅 속에 잠재해 있다가 다음 해 봄이 되면 다시 그 생명의 싹을 틔우는 것이다. 우주 역시 창조와 파괴를 반복한다. 불교에서도 성주괴공(成住壞空)의 우주론을 이야기하며, 다른 고대의 창조 신화들도 우주의 죽음과 재생을 언급하기는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힌두 신화의 다음 그림에서 우주는 비슈누신의 꿈으로 표현된다. 비슈누신이 잠들어 꿈을 꾸게 되면 그의 배꼽에서는 한 송이 연꽃이 피어오르고, 이 연꽃은 브라마를 낳게 되는데 브라마는 다름 아닌 이 우주의 창조자이다. 브라마의 세월이 지난 후, 비슈누신이 꿈을 거두어들이면 연꽃은 다시 그의 몸속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언젠가 비슈누신이 다시 꿈을 꾸게 되면 연꽃은 또 한번 피어오르고 또 다른 우주가 시작되는 것이다. 오딘의 신화에서도 ‘신들의 황혼’을 의미하는 라그나뢰크가 도래하면 우주를 지탱하던 거목(巨木) 이그드라실이 불길에 휩싸이면서 신들은 종말을 맞이하고 육지는 바다 속에 잠겨 세계가 멸망한다. 그러나 잿더미 속에서도 새로운 생명이 움터 나오듯, 대혼란이 지나간 후에 땅이 바다 속에서 솟아나와 녹음이 우거진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고 새로운 태양이 하늘에 모습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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